○ 걸은 날짜 : 2009.12.24 09:50~11:20
○ 함께 걸은 이 : 나+청주지인2
올 한해 유달리 출장이 많았고, 그중에 청주는 거의 매달 출장을 다녔다.
출장때마다 업무만 보고 오는게 아쉬웠는데, 연말 마지막 회의차 출장을 갔다가 시간을 내 함께 일하는 분들과 잠깐 청주를 둘러보기로 했다.
트레킹을 좋아하다보니, 먼저 눈이 간 곳은 상당산성이다.
그 유래가 삼국시대 백제로 올라가는 상당산성에 현재 보존되어 있는 성은 조선의 성이 남아 있다. 원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충북도내의 산성군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서울성곽이나 남한산성에서 볼 수 있던 여장(성가퀴)는 남문 일대에 일부 볼 수 있을 뿐 다른 구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성을 돌다보면 가끔 보이는 성벽의 모습이 아니면 성을 돈다는 느낌보다는 여느 산길을 걷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1시간 30분정도를 걸으면 산성전체를 일주할 수 있다. 동문과 남문사이 저수지 근처에는 한옥마을이 있어 이 곳에서 간단한 식사나 막걸리 한잔도 즐길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신 유흥준 교수께서 이어 4,5권을 준비하시며 서울ㆍ충북ㆍ제주의 내용중에 아마 충북지역의 내용은 산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신문기사를 보았던 것 같다. 아마 그러면 상당산성을 찾는 이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아래는 상당산성 리플렛에 담긴 산성에 대한 정보들이다.
최근에는 여행 안내 리플렛들이 잘 나와서 이것들만 모아도 훌륭한 나의 답사 자료들이 되는 듯하다.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된 이름인 듯하며 둘레가 4.2Km, 면적 22만여평의 거대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상당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청주목 고적조에 고산당성은 율봉역의 북(뒤)에 있고 석축으로 둘레가 7,773척(2,600m정도)인데 성안에 큰 연못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충청병사로 왔던 원균이 수축한 사실이 있으며, 「효종실록」, 「숙종실록」,「비변사등록」등에 의하면, 효종 2년(1651) 충청도병마절도사 營이 해미에서 청주로 옮겨지고, 청주가 중요시 되어 숙종42년(1716)에 충청병사 유성추에 의해 개축이 시작되어 숙종 45년(1719년)까지 대대적으로 성벽이 수축되고 이듬해 성내에 구룡사와 남악사의 2개 사찰과 암문이 마련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성문 부사석의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영조실록」에 의하면, 영조 4년(1728)에 이인좌의 난을 겪고 이듬해 대대적으로 숙축을 시작하여 영조7년(1731) 정청인 운주헌과 포루를 세웠고, 영조8년(1732) 남문에 공작루가 세워지고 수성절목도 완성되었으며, 이후 영조19년(1743)까지 성안의 여러시설이 모두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동장대가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의 3개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동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또한 현재의 저수지는 본래의 수문이 홍수로 없어진 후 1943년에 만든 것이다.
1995년도의 발굴조사로 서장대의 규모(15평)와 위치가 확인되었다.
내탁공법(內托工法) 산의 경사면에 성을 쌓은 후 그 성벽과 산지와의 사이에 생긴 간격을 자갈과 흙으로 채워 성토함으로써 성벽내부에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산성의 특징이다.
여장(女墻) 성벽위에 쌓은 담. 성가퀴라고도 하며, 전쟁시 적의 공격을 피하며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치성(雉城) 성벽에서 바깥쪽으로 돌출되게 쌓은 성벽. 평시에는 외부를 관찰하는 감시초소 역활을 하고 유사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는 역활을 한다. 상당산성에는 3개가 있는데, 모두 남문 주변에 있다.
옹성(甕城) 모양이 반으로 쪼갠 항아리와 같아서 옹성이라 한다. 성문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 상당산성에는 지형상 남문 안쪽으로 쌓여 있다.
수구(水口) 배수구를 말한다. 성벽에 쌓이는 물을 밖으로 배출시킴으로써 성벽의 붕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상당산성에는 3개의 수구가 있다.
체성(體城) 성곽의 부속시설을 제외산 성벽의 몸체부분
미석(眉石) 체성과 여장사이에 남작한 돌로 튀어 나오게 설치한 것으로 마치 눈썹처럼 보여 미석이라 한다. 상당산성에는 미석이 잘 보존되어 있다.
해자(垓子) 성벽의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물을 채워 성의 방어력을 높여주는 성곽시설의 하나이다. 정북동토성에서 해자의 모습이 발굴결과 나타났다.
▲ 산당산성 남문앞 전경..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다.
▲ 남문(공남문) 남문은 상당산성의 정문으로 무지개문(홍예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 남문 근처의 성벽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 상당산성의 성벽에는 대부분 구간이 여장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성벽이 보이지 않는다면 산길을 걷는 듯 하다
▲ 서문(미호문) 서문은 평문으로 거대한 2개의 무사석를 쌓고 그위에 장대석을 올려 놓았다. 성벽 바깥으로 돌출되어 옹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