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란 말을 들었을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푸른바다. 유채꽃. 한라산. 일출봉. 감귤...대부분은 관광지로서의 제주를 떠올리지 않을까.
하지만 잊지 말아주시길.
제주가 안고있는 슬픈 현대사를. 4ㆍ3 1948년 3ㆍ1절 행사에서의 경찰발포, 총파업, 4월 3일 무장대의 봉기, 서청(서북청년단)과 군경의 진압속에 제주 인구의 1/9가량의 무고한 도민이 학살된 비극적인 역사였다.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소되고 공식적으로 4ㆍ3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수많은 제주도민들은 연좌제의 굴레로 '공직진출, 승진'등의 차별을 받는 등의 곤란을 겪어야 만했다.
제주도민들의 끊임없는 진상규명 요구 속에 1999년 국민의 정부(대통령:김대중)시절 특별법 제정과 2003 참여정부(대통령:노무현)의 사과로 제주도민의 명예는 되찾았을 수 있었다.
■ 안내 리플렛에 소개된 4ㆍ3사건 소개내용
제주 4ㆍ3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 당국의 정책 실패와 사회문제 등으로 민심이 불안한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제주도민의 민ㆍ관 총파업에 대응해 미군정은 응원경찰과 서청 단원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테러와 고문을 일삼았다.
결국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ㆍ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하였고, 5ㆍ10 총선거(200개 선거구)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된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 병력을 증파하여 강력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제주도 전역에서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1949년 3월 비로서 선무를 원칙으로 한 진압작전이 전개되어 한라산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하산하였다.
1949년 5월 10일에 재선거가 성공리에 치러졌고, 그해 6월 무장대는 사실상 궤멸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자와 내륙지방 형무소 재소자 등이 또다시 희생되었다.
결국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었다.
이로써 1947년 3ㆍ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ㆍ3무장봉기로 촉발되었던 제주 4ㆍ3사건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2만 5천~3만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가운데 7년 7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세계적인 냉전 상황과 한반도 분단체계의 고착화 과정에서 발발ㆍ전개된 제주 4ㆍ3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으로 귀결되었고, 이후 반세기를 넘어 진상규명운동의 과정을 거쳐 명예회복을 통한 화해와 상생의 해결과정을 밟고 있다.
이 아픔의 역사가 생생히 담겨있는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해 있다.
대학을 진학한 이후 졸곧 서울생활을 하느라 4ㆍ3평화공원이 준공된 이후 찾아보지 못했다.
이번 제주출장 중 오전시간이 빈틈을 이용해 처음 찾아보게 되었다.
총 6개관 1개 특별관으로 구성되어 1관 역사의 동굴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4ㆍ3의 진상이 모두 규명되고 희생자들이 바랬던 통일시대가 되면 글이 새겨져 서게 될 것이라는 백비를 지나 2관 흔들리는 섬, 3관 바람타는 섬, 4관 불타는 섬, 5관 흐르는 섬, 6관 새로운 시작을 지나며 60년전 비극적인 현대사의 진실에 몸서리치고, 그 아픈 역사위에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메모를 남기고 전시관 밖으로 나와서 위령탑과 조형물(귀천), 위령재단과 조형물(비설)을 돌아 황급히 다음 일정때문에 택시에 올랐다.
좀만 시간이 있어서 꼼꼼이 보고 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으며, 다음에 지인과 함께 다시 찾겠노라 생각해봤다.
제주를 들르시는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과 함께, 아픈 역사속에 새로운 역사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잠시 가져보시길..
※추신
교통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분은 43평화공원 홈페이지(http://jeju43.jeju.go.kr)에 들러 공영버스 시간을 확인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아래는 4ㆍ3평화공원 사진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있네요
▲ 4.3평화공원 전시관 전경
▲ 1관 역사의 동굴
▲ 역사의 동굴을 지나면 비문의 적히지 않은채 누워있는 백비가 있다. 언제쯤 비문이 적히고 설 수 있을까
▲ 2관 흔들리는 섬 : 해방에서 4.3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 4.3사건의 도화선.
▲ 구치소에는 제주도민들이 앉지도 못할만큼 가득찼다.
▲ 3관 바람타는 섬 : 4.3무장봉기에서 5.10단선반대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 무장봉기
▲ 제주도 메이데이..미군정에 의해 조작된 오라리 방화사건을 담은 영상
▲ 5.10 단독선거를 반대해 제주도민들은 산으로 올랐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선이 진행되지 못했다.
▲ 4관 불타는 섬 : 해안선에서 5Km밖의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의 역사가 기록.
▲ 불타는 제주
▲ 초토화된 중산간 마을
▲ 부조를 통해 보여주는 4.3의 비극
▲ 부조를 통해 보여주는 4.3의 비극
▲ 특별관 다랑쉬 동굴 : 군경에 의해 동굴에 갇힌채 질식사한 다랑쉬동굴의 발굴당시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 5관 흐르는 섬 : 4.3사건이후의 고통의 역사를 기록
▲ 연좌제란 낙인
▲ 김대중 대통령의 4.3특별법 서명
▲ 6관 새로운 시작 : 해원나무_제주 마을 어귀마다 있는 팽나무를 통해 4.3의 해원을 상징
▲ 전시관 마지막 쯤에 소감 등을 적을 수 있는 메모가 준비되어 있다.
▲ 위령비와 각명비(4.3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비) 전경
▲ 각명비
▲ 조형물 귀천. 각각 성인남녀희생자, 청소년 남녀희생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희생을 상징하는 5개의 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