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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이야기

'호헌철폐! 독재타도!' 다시 서울시내에 울린 구호..

 ▲ 6.29선언후 7.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 운집한 100만의 민중

   
20년전 87년 6월 10일, 2개의 극적인 장면이 벌어진다. 잠실체육관에서는 군부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군사독재정권의 '민정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그리고 전국22개도시에서는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가 24여만명의 참여속에 열렸다. 24여만명이란 수는 단지 실참여자일뿐 '차량경적시위'등의 범국민행동으로 참여를 포함한다면 그 수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였다. 군사독재정권은 정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광폭한 폭력으로 맞섰지만, 성난 민중의 파도를 잠재울 수는 없다. 경찰의 폭력에 명동성당으로 몰리게 된 시위대는 그 곳을 거점으로 5일간의 농성이 진행되었다. 6월 18일 전국 150만명이 시위에 나섰으며, 6월 28일에는 '국민평화대행진'에 100만의 민중이 나섰다.
 
이러한 민중의 투쟁은 결국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텔레비젼에 나와 '직선제 개헌의 수용과 구속자 석방 및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을 핵심으로 하는 6.29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민중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6월 9일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메던 이한열 열사가 끝내 7월 5일 숨을 거두고 그 장례식이 7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되었다. 그 자리에는 100만의 시민의 결집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끝없는 승리의 여정을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약속했다. 물론 경찰은 그 장례식장에 최류탄을 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87년 6월 항쟁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6월항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된 노동자는 이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저임금과 고된노동에 시달리던 현실을 바꾸기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 20년이 지난, 서울시청에 다시 모인 사람들
 

바로, 그 역사적 민중항쟁의 20주년이 되는 오늘. 시청광장에서 다시 사람들이 모여, '6.10항쟁 20주년 기념 범국민대행진'을 열었다.
 


 

▲ 대학생들이 87년 6월의 시위 모습을 재현 행진하고 있다.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분명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과연 진정 그런가?
아직도 서슬퍼런 국가보안법과 각종 공안기관이 그 생명을 유지한채, 민중의 요구를 이적으로 덧칠하고 있으며, 내 강산은 두 동강 난채 21세기 유일한 분단국가로 신음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을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노동 유연화란 이름으로 비정규직으로 몰아놓고 있다.
 
시청광장에 모였던 100만의 민중이 그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은가? 20년이 지난 지금의 6.10항쟁의 현재적의의는 무엇인가?
 
행진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만장에 적힌 글귀들을 보며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많이 남았음을 느끼게 된다.

 

▲ 87년 당시, 구호였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 뒤로 현재의 요구들이 뒤따르고 있다.

 
 

 

▲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살아, 민중들을 탄압하고 있다.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민가협 어머님들의 행진
 

 

▲ 20년전의 주역들의 행진

 
 

 

▲ 20년후, 청년들의 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