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청산, 민주주의와 민족화해ㆍ통일을 위해.

▲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종로 보신각)


12월 1일 국가보안법 공포 60년을 맞아, 종로 보신각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있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500여명의 참가자들이 한뜻을 외쳤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기본으로 하여, 제정되었다.
이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보다는 오히려 정권의 영구성을 위해 이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재판판결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한 인혁당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올해 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판결되었다. 또한 오송회 사건역시 최근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선언했다.

그 뿐인가, 국가보안법은 막걸리법이라고도 부른다.
막걸리를 마시던 어떤이가 "김일성보다 못 한 놈"이란 욕을 했다고, 사우디 건설노동자가 힘이들어 "북은 똑같이 나누어 쓰니 좋겠다"란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 받았다 하여 붙여진 이유였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12월 8일 전북도경이 고교 교사 9명이 '오송회'라는 용공이적단체를 구성했다고 발표한 사건으로 4월 19일 '5명의 교사가 소나무 밑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오송회(五松會)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혁당'
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64년과 74년 두차례였다.
'1차 인혁당사건'은 64년 8월14일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중에 있다"고 발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차 인혁당 사건이 있은지 10년이 흐른 74년 4월,'2차 인혁당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배후ㆍ조종세력으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75년 4월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국방부는 재판이 종료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은 독재의 시대에 정권의 안정을 위한 공안정국을 위해 이용돼 왔다.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다는 2008년, 우리의 현실은 다른가?
2000년, 2007년 2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국가보안법은 그 생명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국가보안법이 그 힘을 다시 쓰기 시작한 듯 하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간디학교의 최보경선생, 통일운동단체인 615공동선언실천연대, 청년운동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노동운동단체인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등에게 다시 이적의 굴레를 씌우고자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잘못된 우리의 역사의 진실을 가르친다고,
통일을 하기위한 대상인 북측에 대해 알려고 하고, 서로의 체제가 존중되는 통일 하자고 주장한다고,
자본주의 모순에 반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고,
처벌된다는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생각만을 하도록 하는. 사람의 머리 속을 통제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법은 남과 북이 서로 미워하도록 한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는 이를 미워하도록 한다.
이법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증오의 바이러스이다.

국가보안법 탄생 60년, 우리는 선택을 해야한다.
미움으로 가득차 갈등의 역사를 끌고 갈지, 법이라고 부르기도 참 부끄러운 증오의 바이러스 '국가보안법'을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화해의 시대를 열어갈지.

출처 : 한국진보연대



덧붙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60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준비한다고 한다. 관심있는 이들은 참고하시길...

국가보안폐지국민연대 http://freedom.jinbo.net/
국가보안법 제정 60년에 즈음한 국가보안법 폐지 토론회
"야만의 시대를 끝장내자!"
11월 27일 목요일 오후 3시 민주노총 9층 교육관

국가보안법 60년, 그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으로!"
11월 30일 일요일 오후 4시 종로 보신각

국가보안법 제정 60주년에 즈음한 "국가보안법폐지 1만안선언" 발표식
12월 1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국가보안법 60년전
12월 1일~12월7일 종로보신각(장소가 바뀔 수도 있다)
12월8일~10일 국회의원회관 로비

Posted by MR.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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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하나그리기 2008.12.01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여기 저기 잘 보고 갑니다.
    종종 구경 와야겠습니다. ^^;

  2. Favicon of https://glat-u.tistory.com BlogIcon 담소 2008.12.01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체를 변혁하다. 치안유지법은 참 어렵게 시작하는군요. 국체라... 체하겠네.

DMZ(비무장지대)를 평화의 생명의 땅으로
 
 


 

사단법인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창립총회에 다녀왔다.
언젠가 추진위원장으로 계신 정성헌 선생님과 짧은 간담회를 통해 간단한 소개를 받고,
분단의 상징이 평화와 생명의 상징이자, 실질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배로부터 창립총회에 참석하자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창립총회에 참가해 내용을 살펴보니 이미 10년전부터 강원도와 시민사회가 손잡고 준비해온 사업임을 알게되었다.
10년전이면 내가 철원 철책앞에서 군생활을 하며, 분단을 몸소 겪던 때였다.
이때 그 분단 상징의 미래를 만들고자 일했던 분이 여기 모여계시다니 사실이 놀라웠다.
김진선 강원도지사, 박삼래 인제군수, 일본에서온 평화활동가 기무라 선생, 최한창 학생의 축사, 영상"DMZ를 평화와 생명으로"로 이어진 개회식으로 시작된 창립총회는 '정관제정, 임원선출, 사업ㆍ예산 승인'안을 처리하고 마무리됐다.
 


 
 
평화생명동산은 인제군 서화면 점고개에 30여만평 규모로 조성되고, 내년 상반기 3만7천명규모의 평화생명교육마을이 완공되어진다고 한다.
비롯 지금은 실제 비무장지대가 아닌 민통선과 민통선 이남지역으로 조성되지만, 이 시작이 크게퍼져 남북을 가르는 폭 4Km, 길이 250km의 비무장지대의 철책과 지뢰로 가로막히 상처가 가시고, 생명으로 가득차고 평화의 기운이 넘쳐가길 기대해본다.
또한 이후 홈페이지(www.dmzecopeace.com)가 열리고 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거리라 기대된다.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창립선언

 

갈라짐은 온갖 고통과 슬픔의 뿌리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우리 겨례와 강토가 남북으로 갈라진지도 어언 55년이 지났습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분단한 비무장지대!
 
DMZ는 지금도 우리 민족의 아픔과 좌절이며 세계평화의 위협이며 인류 문명의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나 DMZ 일원은 자연과 생명의 역동적인 역사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위대한 복원"이 감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쟁, 대결, 죽임, 차단의 DMZ 일원을 "평화와 생명의 터전"으로 바꾸어 내기 위한 뜻과 정성을 모아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을 창립합니다.
 
우리는 온갖 갈라짐의 아픔을 어루만지면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운동과 사업의 바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DMZ 평화생명동산은 다음과 같은 뜻과 정성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첫째, DMZ 일원의 생태계의 역사, 문화를 올바르게 보전하면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드높이는 "바람직한 발전의 전형"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둘째, DMZ의 가치와 그 역사성, 역설성, 다중성을 전국화, 한반도화, 세계화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를 위해 DMZ 일원을 우리 겨례와 한반도는 물론 인류와 지구의 공공성을 통합 실현하는 곳으로 바꾸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뜻과 정성은 평화와 생명 가치를 구체화, 생활화하고 드높히는 운동과 사업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은 지역주민과 뭇 생명을 모시고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군인, 공무원, 전문가와 지구촌 형제 자매들과 협력하여 "스스로, 함께, 그리고 끈질기게" 생명사회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다양성의 존중.
관계성의 강화.
순환성의 구조화.
이것이 생명의 열쇠일 것입니다.
 
나의 평화.
세상의 평화.
자연과의 평화.
이것이 평화의 집일 것입니다.
 
DMZ 평화생명동산은 생명의 열쇠로 평화의 문을 열어 "통일된 새로운 문명사회"로 전진하겠습니다.
 

2008.11.18

한국 DMZ 평화생명동산 창립대회 발기인 일동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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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한 젊은 노동자의 외침을 기억하는 날
 

전 세계 노동자의 날, MAYday는 이제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으로 기념일이 되어있다.
그날이면 전 세계 노동자들이 기념행사를 갖는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5월과 함께, 매년 11월 13일즈음하여 전국노동자대회를 갖는다.
한 젊은 노동자의 이름과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전태일'
나는 고3이 되던 해, 동아리 선배가 물려준 책한권에서 만났다.
'어느 젊은 노동자의 죽음', 그 책을 읽으며 암울했던 시대의 젊은 노동자의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해 싸웠던 지나간 역사로 받아들였었다.
대학들어가고, 사회에 눈뜨기 시작하며 그 역사는 끝난 역사가 아닌 진행중인 역사였다.
여전히 나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노동자들을 만나야 했다.
그리도 나의 후배들에게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를 함께 보고, 전태일 평전을 한권씩 안기고, 노동자들의 집회를 데리고 나갔었다.
 
1970년 11월 13일, 바로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방치하는 노동청에 항의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절규하며 몸에 불을 붙여 쓰러진 날이다.
 
2008년.
우리는 '전태일'이란 이름은 여전히 우리에게 추억될 이름이 아니라 계승하고 함께할 이름으로 다가온다.
올해도 민주노총은 11월 8일 서울역에서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를 진행하고, 9일에는 대학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였다.

아무래도 최근 전국노동자대회에서의 최고 이슈는 '비정규직'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850만을 넘고 있고, 또한 고용불안정 뿐만아니라 모든 처우에서도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정부에서는 '비정규직보호법'이란 거창한 이름의 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분야를 확대하고 정규직노동자 전환을 기피하기 위한 대량해고
를 양산했다. 그리고 이번 국회에서는 현행 비정규사용기한인 2년을 4년으로 연장하려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KTX, 기륭, 코스콤, 이랜드, 뉴코아 등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싸움은 1년도 모자로 2년, 3년을 넘기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국가공권력이란 약한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비정규노동자를 대하는 공권력은 개발독재시대의 공권력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8일 저녁 찾은 서울역에는 접근로 마다,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수배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연행을 위한 공권력으로 막혀있고, 서울역은 경찰버스로 삥 둘러싸여 있었다. 서울역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은 과연 그 공권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아마 서슬퍼런 군부시절의 을씨년스런 향기를 맡은 건 아닐까?
 
경찰버스로 둘러싸인 서울역 광장에는 5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담은 문화공연과 연설들이 이어졌고, 마지막 노동자들의 염원을 담은 풍등을 서울 밤하늘에 띄워올렸다.
밤하늘의 수놓으며 솟아오르는 풍등과 70년 평화시장에서 솟아오른 불꽃이 겹쳐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근로기준법의 어려운 한자때문에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했던 청년 전태일의 바램이  '사회적연대와 관심'을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램으로 다가온다.
 

 

▲ 서울역 접근로마다 공권력으로 막혀있다.ⓒblog.daum.net/godekdqnfvo

 

▲ 노동자 열사.ⓒblog.daum.net/godekdqnfvo
 

▲ 서울역을 꽉 채운 5천여 노동자.ⓒblog.daum.net/godekdqnfvo
 

▲ 촛불의 춤.ⓒblog.daum.net/godekdqnfvo
 

▲ 불이 춤춘다. 세상을 삼킬 듯 .ⓒblog.daum.net/godekdqnfvo
 

▲ 노동의 바램을 담은 풍등이 솟아오른다.ⓒblog.daum.net/godekdqnfvo
 

▲ 풍등이 만든 서울 밤하늘의 노동자 별자리.ⓒblog.daum.net/godekdqnf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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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 촛불과 만나다.
10.4선언 1돐기념 문화제 참관기(늦었어요 TT)
  


 △ 10.4선언 1돐 기념문화제가 서울역에서 열렸다ⓒblog.daum.net/godekdqnfvo
 
10.4선언(남북관계발전과 평화를 위한 선언)발표 1년이 지났다.
2000년 6.15공동선언발표이후, 7년만에 정상이 만나 이룬 두번째 약속이다.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이전의 남북교류보다 더 많은 교류가 이뤄졌다.
6.15공동선언 발표에서 10.4선언 발표까지 기간은 남북간의 정부, 민간분야 가리지 않고 그 교류는 지난 시기보다 훨씬 많았다.
남의 기업이 북에서 만든 제품이 다시 남에서 쓰이고, 비록 한번에 시범운행이었지만 끊어진 철마가 다시 남북을 가르며 달렸다.
그리고 교류는 10.4선언으로 이어졌고,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의 80%가 넘는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운명은 달랐다.
 
선언 2개월후 치뤄진 대선에서 정권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정권8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 남북정상이 약속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그 존재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모든 대화가 막혀있다.
얼마전에 있었던 남북군사회담역시 서로의 입장만 전한채 1시간 30분만에 끝났다.
그것도 회의공개여부를 두고 많은 시간을 소비해버렸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4일 저녁 서울역에서는 '10.4선언발표 1돐기념 6.15 10.4선언을 위한 통일문화제'가 1,000
여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문화제를 통해, 참가자들은 '비핵개방3000의 폐기, 국가보안법 폐지. 6.15 10.4선언 이행'를
요구했다.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이들이의 노력이 아마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 최근 압수수색및 간부들이 연행된 실천연대에서
     국가보안법폐지 홍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blog.daum.net/godekdqnfvo
 
또하나 아직도 촛불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촛불 2.0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모습은 어떤 것일까? 뜨거웠던 촛불이 정부가 생각하는 어떤 배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촛불 2.0역시 촛불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행사의 홍보가 잘 되지 않은 듯한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아 촛불을 다시든 시민들.
행사전 서울역광장 가득 홍보판넬을 설치하고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던 누리꾼들.
그리고 이순간에도 돈을 모아 한겨례, 경향신문을 대량구매해 진실을 알리는 신문 구독운동을 벌이는 시민들.
지역곳곳에서 소규모지만 계속되는 촛불문화제.
이들이 모여 또다시 어떤 모습의 촛불2.0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10.4선언 1돐에 찾아온 촛불.
광우병소라는 먹거리에서 시작된 이슈는 대운하, 공기업민영화, 교육공공성, 비정규직, 경제정책 등을 지나,민족문제까지 확대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솔직히 그러길 기대한다.
 
민주주의 완성을 너머, 평화통일의 길도 환히 밝힐 촛불을 기대해본다.


△ 기념문화제전 누리꾼들이 나와 홍보운동을 진행ⓒblog.daum.net/godekdqnfvo
 

△ 촛불자동차연합의 홍보활동ⓒblog.daum.net/godekdqnfvo 
 

 △ 민주주의 말하다ⓒblog.daum.net/godekdqnfvo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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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10.4 선언 전문)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합의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 기간 중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들이 있었다.

 

상봉과 회담에서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흩어진 가족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 1차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2007년 10월 4일 평 양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통 령                    국 방 위 원 장

노 무 현                     김 정 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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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9선언후 7.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 운집한 100만의 민중

   
20년전 87년 6월 10일, 2개의 극적인 장면이 벌어진다. 잠실체육관에서는 군부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군사독재정권의 '민정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가 그리고 전국22개도시에서는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가 24여만명의 참여속에 열렸다. 24여만명이란 수는 단지 실참여자일뿐 '차량경적시위'등의 범국민행동으로 참여를 포함한다면 그 수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였다. 군사독재정권은 정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광폭한 폭력으로 맞섰지만, 성난 민중의 파도를 잠재울 수는 없다. 경찰의 폭력에 명동성당으로 몰리게 된 시위대는 그 곳을 거점으로 5일간의 농성이 진행되었다. 6월 18일 전국 150만명이 시위에 나섰으며, 6월 28일에는 '국민평화대행진'에 100만의 민중이 나섰다.
 
이러한 민중의 투쟁은 결국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텔레비젼에 나와 '직선제 개헌의 수용과 구속자 석방 및 김대중 씨의 사면·복권'을 핵심으로 하는 6.29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민중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6월 9일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메던 이한열 열사가 끝내 7월 5일 숨을 거두고 그 장례식이 7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되었다. 그 자리에는 100만의 시민의 결집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끝없는 승리의 여정을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약속했다. 물론 경찰은 그 장례식장에 최류탄을 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는 87년 6월 항쟁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6월항쟁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된 노동자는 이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저임금과 고된노동에 시달리던 현실을 바꾸기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 20년이 지난, 서울시청에 다시 모인 사람들
 

바로, 그 역사적 민중항쟁의 20주년이 되는 오늘. 시청광장에서 다시 사람들이 모여, '6.10항쟁 20주년 기념 범국민대행진'을 열었다.
 


 

▲ 대학생들이 87년 6월의 시위 모습을 재현 행진하고 있다.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는 분명히 발전해왔다. 하지만 과연 진정 그런가?
아직도 서슬퍼런 국가보안법과 각종 공안기관이 그 생명을 유지한채, 민중의 요구를 이적으로 덧칠하고 있으며, 내 강산은 두 동강 난채 21세기 유일한 분단국가로 신음하고 있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을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노동 유연화란 이름으로 비정규직으로 몰아놓고 있다.
 
시청광장에 모였던 100만의 민중이 그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은가? 20년이 지난 지금의 6.10항쟁의 현재적의의는 무엇인가?
 
행진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만장에 적힌 글귀들을 보며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은 많이 남았음을 느끼게 된다.

 

▲ 87년 당시, 구호였던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 뒤로 현재의 요구들이 뒤따르고 있다.

 
 

 

▲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살아, 민중들을 탄압하고 있다.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민가협 어머님들의 행진
 

 

▲ 20년전의 주역들의 행진

 
 

 

▲ 20년후, 청년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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