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同行1. 지리산

출발! 안이함이란 어리석음을 배우다

지리산(智異山), 어리석은이가 머물면 지혜가 생긴다.

출발! 안이함이란 어리석음을 배우다
(구례시외버스터미널-성삼재-노고단-벽소령)
 

22일 7시 40분 구례행 버스에 몸을 실은 우리는 자정이 다되어 구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10년전에는 시외버스터미널과 관내버스터미널이 따로 있어서, 도착 후 관내버스터미널로 이동 후에 관내버스터미널 벤치에서 노숙을 했었다. 이번에도 그럴 요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영버스터미널로 합쳐지고, 도착한 버스터미널은 문을 굳게 닫아, 우리의 노숙계획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등산객들은 가까운 찜질방에서 잔다고 이동했다.
우리는 아주 잠시 고민을 하다 노숙을 하기로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랬더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섬진아트홀이라는 건물과 그 주차장에 정자가 보이는 거 아닌가. 거기서 노숙을 하기로 한 우리는 자리를 잡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우리의 성공적 등반을 위한 건배를 나눴다.
하지만 그 건배가 과했을까, 우리는 다음날 6시 버스를 타자는 계획을 못지키고 7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8시 버스를 타게 됐다.

▲ 구례공영버스터미널이다ⓒblog.daum.net/godekdqnfvo


 
그덕에 우리는 계획하지 않았던 야간산행을 하게 됐다.
참고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가는 버스는 4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있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화엄사를 거쳐 성삼재로 향했다. 성삼재는 40여분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돌아 도착할 수 있었다.
 
성삼재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좋을 거란 이야기와는 달리 짙은 안개와 함께 약간의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우비를 챙겨 입었지만, 출발후 곧 다들 벗어제꼈다. 그동안 어지간히 운동을 안한 저질 체력때문이었을까, 잔뜩 들러멘 짐때문이었을까 출발하고 곧 땀이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자했고 빗물에 젖기보다 땀이 우리를 젖시기 시작했다.


▲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길ⓒblog.daum.net/godekdqnfvo

 

그렇게 시작한 우리는 11시경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히 아침겸 점심을 해먹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지리산 종주 등반을 시작했다.
노고단에서 삼각봉(전북, 전남, 경북이 접하는 봉오리)까지는 정상적인 등반을 진행했다. 하지만 삼각봉을 지나면서 체력의 급격한 저하를 보이며 오르막만 보이면 할딱 거리고,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나중에 생각하 보니, 첫날 편히 쉬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거였다.
아마도 우리가 지리산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그랬나 산은 준비된 만큼 보여준다.
안이한 우리에게 산이 안이함을 질타한게 아닐까 했다.
 


▲ 노고단 대피소.ⓒblog.daum.net/godekdqnfvo
 

▲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정상으로 가는 돌계단.ⓒblog.daum.net/godekdqnfvo
 

▲ 노고단 정상.ⓒblog.daum.net/godekdqnfvo
 

▲ 노루묵(반야봉입구) 바위위에서.ⓒblog.daum.net/godekdqnfvo
 

▲ 전남,전북,경남이 만나는 삼각봉
    우리의 생생한 모습은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blog.daum.net/godekdqnfvo
 
참고로 노고단에서 벽소령까지 가는 중간에는 샘이 없다. 예전에 있었는데 이제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샘으로 가던 길이 차단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구간에서는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적절하게 조절하며 마실 필요가 있다.
그래서 물이 무겁다고 첫 휴식에서 한병을 비워버린 우린 삼각봉에서부터 물이 떨어져 한동안 고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우리 산행에서 삼각봉에서 벽소령까지가 우리의 안이함으로 인해 가장 힘든 산행이 되지 않았나 한다.
 

▲ 삼각봉에서 잠깐 만난 지리산의 골짜기.ⓒblog.daum.net/godekdqnfvo
 
노고단에서 출발해, 안개속에서 산행을 하던 우리는 삼각봉에서 잠깐 지리산이 잠깐 보여주는 자태를 볼 수 있었고, 이 후 산행에서 펼치질 지리산의 자태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삼각봉을 지나며 다시 자욱하게 끼기 시작한 안개로 인해 다음날로 넘겨졌다.
 
삼각봉을 지나 연하천으로 가는 길에서 지난 밤의 안이함과 물을 소중하게 다루지 못한 부주의가 급격한 체력저하를 불러오면서, 우리는 오르막 산행이 나올때만도 한걸음 한걸음을 천근같이 내딛어야 했다. 결국 그렇게 가다 어느 공터(헬기장이 마련된)에서 뻗어 한동안 쉬고 나서야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하고 연하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 연하천가는 길에 만나는 끝없는 계단길
   종주길을 거꾸로 가게 되면 이계단을 올라야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blog.daum.net/godekdqnfvo
 
저녁 5시쯔음 되서야 연하천에 도착한 우리는 연하천의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나서, 겨우 정상적인 산행이 가능할 정도의 체력을 회복했다. 지도를 보니 벽소령까지는 약 1시간 30분정도 걸린다고 나와있었다. 랜턴을 준비하지 못했던 우리는 해가 지기전에는 다행히도 벽소령에 도착할 것 같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연하천에서의 20여분정도의 휴식을 마치고 심기일전 산행을 시작했다.
 

▲ 연하천 산장 전경. 물이 정말 시원하다
    이날 이 곳 이후 사진은 산행이 힘들어 없다.ⓒblog.daum.net/godekdqnfvo
 
연하천에서의 첫 기점인 형제봉은 지도에 나온 것과 같이 1시간여동안의 오르락내리락을 하고서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형제봉앞에 쓰여진 벽소령 20분이라는 표지판에 7시 30분 이전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그러나 형제봉에서 벽소령까지는 정말 험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산의 어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가 싶더니 어느순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칡흙으로 둔갑했다.
 
그 순간 우리를 그나마 구원한 것은 뒤따라 오던 경상도 어디선가 왔다는 어르신들이었다.
어른신들 중간중간에 서서 그 분들이 비춰지는 랜턴 불빛에 의존해 더듬더듬 가는 산행길은 정말 기가 막혔다.
등반로를 가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막아서 당황하여 이리저리 살펴보면 이 바위를 기어오르라는 로프하나가 놓였있는 식이었다.
설상가상 함께 산을 오르던 한 후배놈의 등산화 밑창이 분리되는 일까지 벌어져, 대충 끈으로 고정시키고 커다란 돌들로 이뤄진 등산로를 더듬어 갔다.

그러게 1시간여를 산행하고 나서 8시가 되서야 우리는 벽소령 대피소의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정말 첫 날의 산행은 안이와 부주의가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려주는 산행이었다.
대피소에 도착한 우린 우선 산장예약을 확인하고, 밑창이 날라간 후배의 등산화를 대체할 싸구려 운동화를 하나 구입하고 바로 늦은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후배놈이 가방에 핏물을 들이며 챙겨온 돼지고기와 소주한잔을 겸한, 아 정말이지 그렇게 행복한 밥상이 아닐 수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핸드폰 문자를 통해 날라오는 야구국가대표의 올림픽 금메달 소식과 함께 다음날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벽소령 대피소에는 그날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의 피곤한 숨소리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