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쓰기/국제평화통신사 2009 in China'에 해당되는 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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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4.21 미래를 향한 어제와 오늘 찾기 답사 2
  3. 2010.04.15 미래를 향한 어제와 오늘 찾기 답사 1

미래를 향한 어제와 오늘 찾기 답사 3
- 안중근의사의 꿈 동양평화를 찾다 -

1일차 : 2009.08.03
행선지 : 인천국제공항 – 대련공항 – 여순구 군항공원 – 여순감옥 – 여순 구법원 – 대련시


▲ 여순감옥 행정동 앞에서

군항공원에서 10분여 위치에 있는 여순 감옥은 일제기간 수많은 우리 항일투사들이 투옥되고 처형되었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순감옥에서 처형된 대표적 인사가 바로 안중근의사이다.
그 외에도 신채호선생도 복역 중 옥사하셨으며, 박민항ㆍ유동하ㆍ유상근ㆍ박희광ㆍ조도선 선생등 수많은 항일투사들이 복역하였다.(1942~1945.8 사이에만 700여명 항일투사가 처형되었다고 한다.)


▲ 감옥의 내부, 저곳에서 세방향의 감방들을 모두 감시할 수 있다.(파놉티콘)


▲ 단재 신채호 선생의 복역했던 감방


▲ 사형집행장으로 이어지는 길. 정면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사형장이다. 안중근 의사는 저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형이 집했됐다.

여순감옥은 러시아와 일본의 점령기간 2차례 공사를 거쳐 지어졌다.
회색벽돌로 지어진 부분이 1902년에서 1904년 2월 사이 러시아에 의해 지어진 부분으로 러일전쟁기간 야전병원ㆍ병영으로 쓰였다. 적색벽돌로 지어진 부분이 러ㆍ일전쟁이후 일본에 의해 증축된 부분으로 동북지대에서 제일 큰 감옥이 되었다고 한다.


▲ 회색벽돌은 러시아 점령기에 붉은 벽돌은 일본 점령기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 여순감옥은 철거위기에 몰렸던 구법원과 달리, 중국정부에의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공간으로서 활용되고 있어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들 역시 많이 찾고 있다.

8월 본행사에 찾은 여순감옥은 바뀐 부분이 있었다.
당시에는 공사중이던 '여순감옥의 국제지사 전시관'과 '안중근의사 사형집행장'이 새롭게 열려 있었다. 국제지사 전시관이라 이름은 되어있지만, 실제 전시관안에는 여순감옥에 수감되었던 우리 항일투사들에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단,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티켓을 구입해야만 했다.(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 국제지사관..우리 항일투사들과 관련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제지사관 출구에는 "역사교육은 기억에 대한 훈련과 영혼에 대한 세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인생으로 인생으로 하여금 강력한 신념과 행위를 갖도록 한다. 한 민족이 만약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없다면 영원히 생명력을 잃게 된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구를 보며, 선택과목이 되어버린 '국사'과목에 대한 우려가 앞섰다.

국제전시관을 나와 안중근의사 사형집행장에서 참가자들은 추모를 하고, 안중근의사의 유필들을 둘러보고 여순감옥 답사를 마무리했다.


▲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 건물..이곳에 추모관이 위치하고 있다.


▲ 안중근 의사의 유필들


▲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 앉았을 의자


▲ 안중근의사 복역했던 감방


▲ 저책상 앞에서 '동양평화'에 대한 이상을 펼쳤을 안중근의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1시간 30분여의 여순감옥 답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안중근의사 재판을 받은 여순 구법원(여순관동법원구지)으로 향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그래서 일까 6월에 와본 모든 답사지는 5시면 문을 닫았다. 혹시 구법원 답사를 시간때문에 못하는 거 아닐까 혼자 걱정하고 있었는데, 여순 안내를 맡아주신 박용근 선생님이 사전에 구법원 관리소측에 이야기를 해서 우리의 답사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주셨다.

여순감옥에서 여순구법원까지는 차량으로 10분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
17:00경 도착한 여순 구법원에는 답사때도 뵌 적 있는 정춘매선생이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가, 전시관을 차분히 안내해주었다. 여순구법원의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관을 지나, 안중근의사의 재판을 진행했던  2층 대법정에 도착했다.


▲ 1층 전시관 


▲ 2층 대법정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이 곳 대법정에서 안중근의사는 이등박문의 죄상을 폭로하고, 대한국 군인으로써 적의 수장 이등박문을 응징한 것으로 전쟁포로이므로 일본의 법이 아닌 만국공법으로 재판받아야 함을 당당히 밝혔으나 일제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언도하고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안중근의사가 일본과 재판을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향해 당당하게 변론을 펼친 그 곳에서 우리는 안중근의사의 의거100돌, 서거 99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대련에서의 일정을 돌봐주신 황희면 선생님은 격려사에서 청년들의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잊지말것을 당부하시고, 성장하는 중국과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을 촉구하셨다.
미국중심의 세계를 다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 우리사회에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들었다.

짧은 기념행사를 마치고, 2층 나머지 전시관을 둘러보고 대련시로 돌아가기 위해 18:10 버스에 올랐다.
여순안내를 해주신 박용근 선생님과는 여기서 작별을 해야했다.


▲ 여순구법원 앞에서

* 여순감옥과 여순구법원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순재단(http://www.yeosoonfoundation.or.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Posted by MR.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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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lschan.tistory.com BlogIcon 靑志器 (청지기) 2010.05.19 14: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작년 중국 기행 사진이군요..ㅋ

    • Favicon of https://prelabor.tistory.com BlogIcon MR.두더지 2010.05.20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컴퓨터 하드에 짱박아 놓기 아쉬워 이렇게라도 조금씩 꺼내놓을라고 발악중이죠..그것도 쉽지 않네요..답사기 책쓰시는 분들 정말 위대합니다

미래를 향한 어제와 오늘 찾기 답사 2

- 안중근의사의 꿈 동양평화를 찾다 -

 

1일차 : 2009.08.03

행선지 : 인천국제공항 대련공항 여순구 군항공원 여순감옥 여순구법원 대련시

 

오랜 행사준비 끝에 마침내 평화통신사 출발일이 밝았다.

6월달 답사차 갔을 때와는 달리, 일행들을 안내해야 하는 본행사를 맞이하자 과연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속에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 사이에 공항철도를 이용해도 되었으나, 짐이 많아 갈아타기 귀찮음에 집근처에서 공항리무진버스를 이용했다.

아침 출근길에 늦을까 좀 일찍 출발했는데, 왠걸 도착예정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는 것이 아닌가.

공항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고, 일행을 기다렸다.

11:30분 대련행 남방항공 탑승관계(국제선은 1시간전에 탑승수속을 완료할 것을 권하고 있다.) 10시로 잡은 집결시간에 거의 모든 참가자가 도착했다.

미처 오지 못한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위치를 물으니 30여분 소요된다고 해서, 먼저 온 참가자들부터 수속을 하고, 나를 포함한 스텝 둘이 남아 다른 참가자를 기다렸다.

통화와 달리 11:10분쯤 도착한 마지막 참가자와 겨우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로 이동했다.

이미 다른 참가자들은 탑승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탑승 후, 2시간쯤 후 비행기는 목적지인 대련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중국은 북경표준시를 이용해서 우리보다 1시간 늦다. 그래서 공항에 도착해 로밍폰에 전원을 넣으니 시간은 1230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대련시는 동북성에서 큰 도시 중 하나이고, 최근 가장 빠른 성장(조선업이 중심 산업으로 우리가 조선업을 발전시킬 당시의 일반 화물선 등의 수주량이 무섭게 늘고 있다고 한다)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초라하다.


▲ 대련공항 전경
 

공항에는 지난 6월 답사시 많은 도움을 주셨던 황희면 선생님과 안내를 도와주실 최영관 선생님께서 나와 반겨주셨다.

6월 답사시에는 대련시에서 황희면 선생님을 만나, 본행사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는 이유로 이튿날 여순으로 갔었는데, 본행사에서는 간단한 인사 후 1250분경 바로 전세버스를 이용 여순으로 향했다.


▲ 여순으로 가는 전세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한 점심과 설명을 들었다.


대련시에서 여순(대련시에 포함되어 있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여순이 대련보다 규모가 더 컸었다고 한다)까지는 1시간여 소요된다.

버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최영관 선생님의 대련에 대한 소개와 우리가 가게 되는 여순 감옥과 안중근 의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소개들은 해당 답사지에서 간략하게 소개한다)

 

여순은 랴오둥반도(요동반도) 남쪽끝에 있으며, 1년내내 얼음이 얼지 않고 수심이 깊어 항구로서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청일전쟁(1984~95)이후 일본의 조차지였던 반환된 후 1898년에는 부동항을 원했던 러시아가 점령된 후 조차권(러시아인들이 부르던 이름은 포트아서)을 얻었다.

러일전쟁(1904-5)이 발발하면서 일본의 주요공격목표가 되었는데, 이는 부동항을 원하는 러시아와 중국으로의 진출로를 원하는 일본의 충돌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러ㆍ일전쟁은 한만(조선과 만주)의 지배를 두고 두 열강의 충돌인 동시에 러시아는 프랑스 자본을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자본을 끼고 벌인 전쟁으로, 이 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는 열강사이에 실질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포츠머스 조약 : 미국 루즈벨트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러ㆍ일전쟁의 강화조약, 러시아는 일본의 조선지배를 인정했다).

전쟁에서 고전하던 일본은 203고지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1일전투에서 8,000명의 희생)를 치룬 승리 후 승기를 잡는다. 일본의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노기 마레스카는 이 전쟁을 지휘하면 2만여명의 희생을 낳았다.

 

14:00경 여순 첫번째 답사지인 백옥산 리프트 탑승장에 도착했다. 여순 감옥과 구법원의 소개를 담당해주실 박용근 선생님이 나와 계셨다. 백옥산은 러ㆍ일전쟁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여순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군사요충지이다. 백옥산 답사를 통해 러ㆍ일전쟁의 의미와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첫 답사지로 백옥산를 선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답사일정상 리프트를 이용하는 것은 힘들어 6월답사시 이용했던 차량통행로를 이용하자 요구를 기사분이 거부했다. 버젓이 다른 버스(우리가 이용했던 버스보다 더 큰)가 우리 옆을 지나 올라가고 있음에도 도저히 말이 안 통했다.

30여분을 기사분과 신경전을 펼치다, 이렇게 시간이 지연되면 다른 일정에 문제가 될 것 같아 참가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근(10분거리)에 군항안변공원으로 답사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 군항안변공원 사자상앞에서 설명을 듣다.

 

▲ 군항안변공원에서 바라본 여순구(여순항의 입구)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순은 천혜의 항구입지이다.

세계 5대 군항으로 뽑히는 여순군항은 동ㆍ서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은폐 및 방풍이 좋고, 방어가 유리하다. 청에 의해 1882년부터 1890년 사이에 건설되어 청의 북양함대가 기지로 사용되었었다. 그리고 청ㆍ일전쟁으로 일본이 점령한 이후 앞서 여순에 대한 설명처럼 조차권이 옮겨갔다 러ㆍ일전쟁이후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1955년 소련이 철수한 이후에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군항으로 쓰이고 있으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군항안변공원은 군항 중 일부지역(백옥산의 남쪽 정면)에 위치한 수변공원으로 여순항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여순구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는 한ㆍ청ㆍ일 동양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서양세력을 방어해야 함을 최상책으로 제시하며, ‘러ㆍ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한 것은 한ㆍ청이 일본을 도운 결과로, 전쟁의 결과 조선의 지배를 인정받은 것은 잘 못이며 결국 이는 일본이 패망으로 갈 것임을 경고했다.

이 주장은 이미 제국주의 나선 일본의 본질과 제국주의 열강사이의 합종연횡을 간과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에 일본이 한ㆍ중의 항일전쟁과 제국주의국가들과의 전쟁으로 패망하게 된 것은 사실이며, 현재의 지역 블록화가 경제를 넘어 국가통합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는 현실에서 아직도 동북아 혹은 아시아의 협력 정도가 미력하여 경제규모 등에 비해 세계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음을 볼 때 아직까지도 많은 의미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군항안변공원에서 러ㆍ일전쟁과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 등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와 30여분간의 답사를 마치고, 1일차 주 답사지인 여순감옥과 여순구법원을 향해 출발(15:10)했다.



덧붙임..백옥산 풍치지구

 

본 행사에서 현지사정으로 답사하지 못한 백옥산 풍치지구는 6월 사전답사시 살펴볼 수 있었다.

사전답사 첫날 대련시 도보 답사를 진행하고 나서, 황희면 선생님이 대련일대 답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날(17)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차량과 이문재 선생님과 여순으로 향했다.

사전답사시에는 여순 구법원(관동도독부)-여순감옥-백옥산 풍치지구 순으로 답사하고, 대련시로 돌아오는 중 지역의 민속박물관을 들러 대련으로 돌아왔다.


▲ 백옥탑


▲ 백옥산 정상에서 바라본 여순항과 여순구


▲ 군항안변공원에서 바라본 여순 


백옥산 정상에는 백옥탑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표충탑(
表忠塔)이라고 한다. 러ㆍ일전쟁을 승리한 기념으로 노기 마레스카와 도고 헤이하치로가 수천명의 중국 노역을 통해 건설한 탑이다.

높이 68.5m의 포탄 형상을 하고 있다. 표충탑은 일본 천황에 대한 충성을 다진다는 의미였는데, 중국에 의해 1984년에 바이위타(백옥탑 白玉塔)로 개칭되었다.

 

백옥산 정상에서는 여순시 전경과 함께 여순항의 아름다움과 군항의 위풍당당함을 조망할 수 있다.

 


Posted by MR.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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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한 어제와 오늘 찾기 답사

- ‘2009 국제평화통신사 in China’ 답사기 -

 


▲ 중국 유학생, 현지 대학생들과 천안문광장에서

평생 해외여행의 경험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경제적인 이유든, 생활사적 이유든 그리 많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찾아온 11박 12일간의 중국답사여행의 기회는 나의 오감과 생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개인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청년통일문화센터 푸른공감(이하 푸른공감)에서 진행한 ‘2009 국제평화통신사 in China(이하 평화통신사)’란 행사에 스텝으로 함께해달란 부탁에 업무부담도 걱정됐지만 ‘기대반, 의무감 반’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평화통신사 행사는 21세기의 주역이 될 청년들이 ‘자기정체성’과 ‘세계사적 안목’이 조화를 가지고, 지난 세기 반목ㆍ대립ㆍ경쟁ㆍ폭력의 역사를 반성하고, 평화ㆍ상생ㆍ교류ㆍ협력의 문명시대를 지향해 갈 수 있는 ‘역사기억’에 기초한 상상력을 갖기 바라며 기획된 역사ㆍ문화 답사 행사이다.

행사개요

 

행사명 : 2009 국제평화통신사 in China

행사일정 : 2009.08.03~14

행사장소 : 서울-여순-대련-단둥-환인-집안-백두산-연길-만리장성-북경

프로그램

   안중근의사의 꿈 동양평화를 찾다

   동북공정의 현장에서 고구려의 호연지기를 배우다

   백두산에서 민족의 미래를 상상하다

   교류! 미래 상상의 공간

   한중역사문화교류회

주최 : 청년통일문화센터 푸른공감, 경향신문,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주관 : 청년통일문화센터 푸른공감

후원 : 동북아역사재단

  

행사의 스텝으로 616~27일 동안 사전답사 1, 8 3~14일 본행사 2차로 각 11 12일간 대련~연길에 이르는 동북성 일대와 북경을 답사하게 되었다.

컴퓨터 하드 속에 담긴 상당량의 사진파일을 뒤적이며 만족할까 하다, 더 오랜 기간이 지나고 답사 당시의 소중했던 단상들을 모두 잊을까 싶어, 답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 메모와 사진, 머릿 속 구석에 구겨진 기억들을 꺼내 답사기를 정리해 두기로 했다.

 

워낙 글솜씨도 언변도 능하지 않아, 제대로 서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2009년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뜨거웠던 중국 답사의 느낌들을 나의 불안전한 기억력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답사과정에서 현지에서의 지출과 일정의 기록을 담당했던 이유로, 이 답사기 역시 일정을 중심으로 그때마다의 단상들을 정리할 예정이다.

주요서술은 본행사를 중심으로 하되, 사전답사와 달리 진행된 부분이 있어, 본 행사에 다뤄지지 않은 장소와 내용들은 별도로 서술하려 한다.

 

배낭여행과 같이 독자적인 여행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겠으나, 그냥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생각도 있겠구나 하고 봐줬으면 한다.


 
Posted by MR.두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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