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同感1. 생활리뷰/영화 공연

보듬고 가야할 지독하게 슬픈 역사 ... 작은 연못


'작은 연못 봤어요.'..'개봉 안 했는데, 어떻게 봐'..'시사회표 있는데 보실래요'
어느 날, 후배로부터 무심히 날라온 문자 한통으로 '작은 연못'을 만나러 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간 대학공간에는 '한국전쟁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관련한 미국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들과 사진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처음으로 '노근리'를 만났다.
EBS에서 방영한 'BBC의 다큐 : Kill 'Em All'을 보기도 했었다.
당시 내 생각은 글쎄, 오래된 시간이라 정확하지는 못했지만 이성적 분노였던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을 커다란 바위가 지켜주었다하여 대문바위를 신성시하고, 마을이름 조차 '대문바위골'인 충청도의 산골마을 밤길을 달리는 한대의 짚차로 영화는 시작한다.
'보도연맹¹'에 가입된 남자을 연행하러 가는 경찰들이다. 간난 아기를 품에 안은 아내와 이야기 하던 남자는 소란스런 소리에 담을 넘어 산으로 도망간다. 이 에피소드는 이 마을주민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전주곡이 된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한달여 지난 7월 대문바위골 아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전쟁은 사전에나 들어있는 단어 였다. 새학기가 되면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서 '노래자랑대회'도 참여하고 창경원에도 놀러갈 기대에 적어 있었다. 7월 녹음을 배경으로 아이들이 합창하는 '천리길(김민기 곡)'은 녹음만큼이나 생기발랄하고 즐겁다.

어느 날, 갑자스레 마을을 비우라는 미군들에 통보에 피난을 가게 되는 대문바위골 주민들.
피난 도중, 쌍굴다리 위 철로로 몰린 주민들. 미군 트럭이 와 남쪽으로 피난시켜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주민들 머리위를 날으는 미군의 전투기에서는 폭탄과 기관총이 난사된다.
그를 피해 몸을 숨긴 쌍굴다리안으로도 미군의 진지에서 탄환이 날아든다.

그 순간, 나는 장면장면을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슴을 커다란 돌로 누르듯 답답해져왔다.
그렇게 잔인한 공간에서 맞이한 새 생명의 울음소리. 희망이었음 했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또 다시 밤의 어둠에서 탄환에 안내선이 되고, 그로인해 자신 새 생명을 개울 속을 담가 꺼뜨리는 장면 영화관 곳곳에서 작은 탄성들이 터졌다.
그렇게 작은 희망마저 묻어버리는 공간, 참으로 지독한 현실이었고 지독한 영화였다.

잔인한 70시간이 지나고, 살아 남은 이들은 그해 가을 다시 마을로 돌아가고, 곱게 단풍이 든 산골마을로 지는 해는 왜그리도 고운지.

전쟁, 그것은 평화와 생명을 단 한순간에 파괴 시켜버릴 뿐 아니라, 두고두고 왜곡시킨다.
"....깊은산 작은연못/어느 맑은 여름날/연못속에 붕어두마리/서로 싸워 한마리는/물위에 떠오르고/그놈살이 썩어들어가/물도따라 썩어들어가/연못속에선 아무것도/살수 없게 되었죠/깊은산 오솔길옆/자그마한 연못엔/지금은 더러운/물만 고이고...(노래 '작은 연못' 中/ 김민기)"
한 민족간의 싸움은 3년이었지만, 우리사회는 얼마나 긴 세월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 왔는지. 노근리 유족들을 비롯한 한국전쟁당시 양민대상 범죄의 피해자들은 2004년 명예회복이 되기 이전에는 피해자이면서도 죄인으로 살았어야 했으며,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상과 상상력들이 좌와 우 딱두가지 기준에 의해 분류되고 어느 한쪽은 금기되야 했다.
남북 200만 가까운 청춘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간을 참호안에 묻어야 한다.

이런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해준 이 영화가 고마웠다.
영화가 끝나고, 6분정도의 제작과정을 담은 짧은 다큐가 상영됐다.
우리 역사에 너무 아픈 그 순간을 노캐런티로 제작해준 배우와 스탭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힘겹게 관객들에게 끄집어 놓은 질문이 고마웠다.
한국전쟁 발발 60년, '평화와 생명'을 위해 지독하게 슬픈 역사 속의 상처들을 어떻게 보듬어 가야 할지를 영화가 이제 묻는다. 

-출처 : 다음영화 정보

영화 후반, 다시 아이들의 '천리길'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이 노래는 전반부의 생기발랄함과 즐거움을 벗어나 장중함으로 다가온다.
"....발목에 엉킨 칡넝쿨 우리 갈길 막아도....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노래 '천리길 中/김민기)"가야할 우리 역사고 우리 땅이기에.

영화를 보고나서, 누가 잘못하고 이래서 분노하고를 넘어, 모든 형태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생명을 지향해가야함이 내 가슴의 먹먹함을 푸는 방식일것이란 이야기를 내 몸 곳곳에서 외쳐대는 것 같았다.


₁보도연맹 :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다. 이 단체는 국가보안법의 구체적인 운용책의 하나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자 또는 전향자로 분류된 인사들을 이 단체에 빠짐없이 가입하도록 규정해 놓았으며, 그들에 대한 회유와 통제를 쉽게 하도록 했다. 1949년말까지 이 단체의 가입자 수는 약 30만 명에 달했으며, 서울에 1만 9,800명이었다. 1949~50년 이들은 당시 좌익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일부 위장전향자들과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뿌리뽑는다는 정부방침에 의해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이 실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때의 실상은 공개된 것이 없다.(Daum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