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세계'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억압도 장애도 없는 세상.
하고자 하는 바를 맘껏 해볼 수 있는 세상.
불행히도 이 영화는 그런 낭만적인 '자유로운 세계'를 그리지는 않다.
이 영화의 감독이 노동자, 빈민 등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들을 많이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이라는 사실에서 이 제목이 상당한 역설을 갖고 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가 싶다.
인력소개업에 종사하며, 성과도 좋던 싱글맘 엔지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성추행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쫒겨난다.
분노하던 엔지는 친구 로즈와 함께, 불법인력소개업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불민이민자들을 소개할 경우 더 큰 돈이 됨을 알게 되고, 점점 불법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불법이주노동자를 고용했던 한 공장에서 4만불의 임금을 부도수표로 지급하고,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을 떼인다. 엔지는 이주노동자들을 소개해 2만5천불이란 이득을 보았지만, 그 이득을 노동자에게 일부나마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거부하고, 본인들도 손해 보았다고 노동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엔지는 아들 제이미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위해, 깨끗하고 큰 사무실에서 안정되게 사업을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깨끗한 사무실로 옮겨가는 순간, 엔지가 6개월만 불법을 하자던 이야기는 사라진다. 다시 우크라이나 불법이주노동자들을 모아 돈을 벌 계획을 가진다.
우크라이나에서 노동자를 모집하는 곳에 면접온 한 여성의 '이 회사의 무지개 로고처럼 희망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 앞에 엔지는 소개비를 천천히 확인한다.
비극적인 일이다.
나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이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나의 자유로운 세계를 위해, 다른 이들의 자유로운 세계를 좁혀야 하는 일이다.
불행히도 '신자유주의'를 마치 절대선이냥 이야기하는 현대사회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이 나의 자유로운 세계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하고 있은지 오래다.
낮은 생산원가를 위해 불법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고나서, 이들에게 제대로된 대우를 해주지 않는경우는 허다하다.
거의 모든 기업의 신규채용이 인턴채용으로 탈바꿈하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청춘들만이 '자유로운 세계'에 안착할 수 있는 기회에 가까워진다. 나머지는 언제끝날지 모를 비정규의 쳇바퀴를 돌려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불법체류가족을 도와주었던 엔지가 다시 그들을 자기가 새로 소개할 이조노동자들의 숙소를 위해 이민국에 신고하게 되는 것과 같이, 나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위해 우리의 자유로운 세계를 위한 자리를 내줘버리게 되는 것이 차리리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다.
나의 자유로운 세계가 아닌 우리의 자유로운 세계를 위한 꿈이 필요하다.
엔지의 자유로운 세계가 그녀의 아들 제이미를 위협하듯(임금을 떼인 노동자들은 제이미의 안전을 위협하여 임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결국 나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하게 만드는 사회는 우리 미래를 위협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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