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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설..아버지에 대하여

일년에 두번 추석과 설이 되면 어김없이 귀향전쟁을 치룬다.
특히 이번 설에는 눈까지 내려 많은 사람이 고생을 한 듯하다.
나야 표만 제때 예약한다면 편하게 갈 수 있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그러니 금전적으로야 좀 더 들지 모르지만 솔직히 집에 가는 길은 제일 편한 편이다.

지난 추석에는 3개월전에 미리 표를 구해놔서 수월히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정사 관계로 일정이 좀 꼬이다 보니 표를 미리 구해놓지 못했다.
그래서 급하게 구하다보니, 설전날 저녁에 내려갔다 설날 1시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아야만 했다.
정확히 제주도에 17시간을 있다 왔다. TT

동생이 시집을 간 이후, 우리집에는 여자가 없다.
거기다 아들은 타지에서 생활하다보니, 아버지 혼자서 명절을 준비하신지 오래됐다.
그래서 하루라도 먼저가서 음식준비도 하고, 명절보낼 준비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번설은 아버지께 더 죄송스럽게 되버렸다.

고향집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고향집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어둠이 깔린 제주공항에 내려 집을 들어가니 어느새 9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아버지와 늦은 저녁을 같이하고, TV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밤은 깊어졌다.
뭔가 생각나신듯이 부엌으로 가시더니 뱅어돔 한마리를 들고 오셔서는 회를 치신다.
직접 가까운 바다에서 낚으신 생선을 내가 내려올때마다 이렇게 썰어주신다.
지난 추석에는 한치를 썰어주셨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준비하는 명절상이다보니 다른 집보다 부실한 음식장만임에도, 우리집을 찾는 친척분들이 은근 기대하는 것은 아버지가 직접 낚은 자연산 회감들이다.
어릴적에는 아버지와 종종 바다낚시를 다니곤 했었는데, 이번 설에도 좀 여유가 있었음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해볼가 해었는데 아쉬웠다.

갑자스레 부엌에 가시더니 뱅어돔 하나를 들고와 회를 썰어주시는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가 썰어주시는 회를 먹으며 밤이 아주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일찍 큰어머님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참고로 제주에서는 각 집에서 치르는 명절을 순서를 정해서 돌아다니며 친척들이 다함께 치른다.
그리고 다음순서로 우리집 차례를 지냈다.
역시 나머지 한마리에 뱅어돔 회는 친척분들께 무척 즐거움을 선사한 듯 했다.
그리고는 나는 비행기시간때문에 더 이상의 차례를 지낼 수 없었다.

공항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짧고 헤어지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쓸쓸함이 깊게 느껴졌다.
너무짧은 체류기간 때문이었을까? 한해한해 쌓여가는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을까?
설전날 먹었던 회의 질감이 살아난다.
바닷가에 홀로 낚시를 드리우고 계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포장해주신 지난해 수확하신 귤 2상자의 무게가 전해진다.
올해 봄 과수원에서 가지솎기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흐린 제주하늘이 내마음만큼 불편하다.



다음 집을 올때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