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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索3. 세상엿보기

용산참사 추모, MB악법 저지. 시민과 야4당이 함께 하다.

2월 1일.
청계광장에 다시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용산참사 추모와 MB악법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
87년 6월 항쟁이후, 처음으로 야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시민들이 함께 한 집회라고 한다.
뒤늦게 청계광장에 가보니, 청계광장은 지난 해 촛불집회이후 오랜만에 1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엄청난 병력과 수십대의 경찰 버스를 이용한 청계광장을 둘러싸고 광장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놓았다.


청계광장 뒤편에서는 그나마 좁은 광장입구도 버스로 연결해 막으려는 경찰과 집회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민들 사이에 작은 실갱이도 일어났다.



광장 곳곳에 붙은 현수막, 스티커 그리고 낙서들을 통해 참가한 시민들의 용산 참사와 MB악법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등장한 새로운 언론 인터넷 생중계 방송국들이 이제는 나름 체계적인 취재 시스템을 가추고 국민대회가 진행되는 과정을 일일이 취재했다.










집회의 선두에는 영정을 껴안은 유족들과 집회를 주최한 야4당의 대표들이 자리했다. 국민대회 1부가 끝나고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2부인 추모문화제가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에게 촛불이 나눠지고, 작년 여름 이후 처음으로 1만이 넘는 촛불이 청계광장을 가득 채웠다.
길거리 가수들의 공연과 종교인들의 추도사가 이어지고, 1만여 촛불이 함께하는 노래가 이어졌다 .
참가자들은 마지막 순서로 풍등에 각자의 소망을 담아 서울 하늘에 띄웠다.
수십개의 풍등이 하늘을 수놓으며 별이 되었다.






풍등을 띄운 참가자들은 야4당 대표와 유족들을 선두로 명동성당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들은 경찰버스를 동원해 차도로 나오는 것을 완전봉쇄했다.
참가자들은 그런 경찰들에 분노를 토해냈다. 명동성당까지 행진 후 집회는 종료됐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산발적 시위를 진행했다고 한다.
시위대 200여명은 퇴계로쪽으로 진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대한 검찰 조사는 어느새 진상규명보다는 '전철연'에 대한 수사로, 경찰 책임 물타기로 바껴가는 듯 하다.
2월 국회에서는 여론조사결과에서도 보이듯 국민들 다수가 반대하는 법안들을 밀어부칠 태세다.

국민들이 힘들다.
2009년 또다시 국민들은 거리위에 서야 하는 것일까?